그렇다고 비판을 멈출 수는 없습니다.
이는 사랑하는 것과 비판하는 것은 공존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제대로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님은 회초리를 항상 준비해 두고 있음과 같습니다.
적어도 현재로서 나는, 목사님의 개인적이고도 인간적인 허물은 비판 대상으로 삼지 않으려고 합니다.
사실 인간적 허물도 목사님의 경우라면 성도들로부터 존경과 신뢰를 잃게 하는 원인이 됩니다.
그러므로 그러한 것도 마땅히 비판의 대상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 목사님은 그것을 따질 겨를이 없습니다.
그보다 더 본질적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한 교회 공동체를 맡은 목자」로서 감당해야 할 그 사명을 제대로 행하지 못하거나 그릇되게 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나는 그 사명 중에도 가장 큰 사명은 설교라고 생각하는데 지금 우리 목사님의 설교는 너무나 부실하거나 그릇된 것입니다. 심한 경우는 신학에 대해서 쥐뿔도 모르는 우리 평신도가 듣기에도 너무나 해괴한 설교로 일관되고 있어서 그야말로 목불인견(目不忍見)입니다.
목사님은 설교 중에 회중을 향해서 당신의 설교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흠집을 잡는 고약한 사람이 있다면서 저주하는 발언을 수시로 하시지만 크게 잘못된 생각이고 발언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목사님에게 우리가 기본적으로 요구하는 것은 올바른 설교를 제대로 잘 알아듣고 깨달아 배우게 해주시고, 은혜를 누리며 죽어가는 생명이 되살아나는 행복감을 체험하게 해주셔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진정한 치유가 아니겠습니까?
설교를 제대로 하지 못한다면 이미 목사로서의 자질을 상실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목사님의 설교는 ‘하나님 말씀’을 그대로 온전히 회중에게 전하는 나팔이요, 확성기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 말씀을 왜곡하거나 잘못 전한다면 그것은 말씀 나팔(확성기)이 고장 났거나 제 구실을 못하는 것이므로 고쳐 쓰거나, 그것도 안 되면 폐기처분하는 것이 마땅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목사님을 새로이 청빙할 때 우리는 그의 설교 능력을 가장 중요하게 따져보게 됩니다.
따라서 설교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은 당연하고도 당연한 일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순진한 성도들에게 하나님 말씀이 아닌 고약한 인간의 발언을 하나님 말씀으로 곧이듣게 되는 불상사를 겪게 할 것입니다.
이는 회중인 성도들에게 상처주는 수준을 넘어 그들의 영혼을 멸망의 구렁텅이로 빠뜨리는 행위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버스 운전기사가 승객을 대하는 태도가 불손하다거나 언행이 고약한 정도라면 그냥 비난을 받는 정도로 그칠 것입니다. 그런데 음주운전에 난폭운전을 해서 승객의 생명을 위해할 수준에 이른다면 승객들은 그 운전자를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당장 그를 핸들에서 끌어내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 과정에 버스가 흔들리고 소동이 다소 있을 지라도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목사는 교회의 운전기사라고 할 수 있는데 그 목사가 운전(설교)을 잘못하고 있다면 그 목사를 강단에서 끌어내리는 것이 마땅하다 할 것입니다.
그것은 사랑하는 분이라 할지라도 어쩔 수 없는 겁니다.
그분을 인간으로서 사랑하면서 목사의 자리에서는 몰아내야 한다는 것은 끔찍하게 가슴 아픈 일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럴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런 불상사를 미리 예방하려면 곁에서 자꾸 찔러주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겁니다.
이것이 바로 설교 비판의 이유라고 할 것입니다.
내가, 다른 이가 하기를 꺼리는 악역을 맡은 것은, 내가 그의 몸에 가시가 되어 긴장을 놓지지 않고 성실하게 준비된 설교를 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해이한 심령으로 그릇된 설교 태도를 고치려고 하기는커녕 갈수록 더욱 방자하게 하게 될 터이기 때문입니다.
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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