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5 6

종로 5가 분들 만나니..

첫 마디가"교회 이름을 되 찻았네요?"."그래요"."교회 평온 해 졌어요?""네 ! 파도는 잠들어 있어요"."ㅇ목사건은 어떻게 하시려구요?."네 앞으로 격거야 할 파고이죠 . 잘되기를 바랄 뿐이죠"."그리 쉽지는 않을 겁니다""저도 걱정하고 있어요." 이제 우리교회 이야기는 하지 맙시다 총회는 잘 돌아가고 있겠죠?.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어버이 날 이면 생각 나는 사람

서울 어느 큰교회 이야기이다7년 전 으로 기억 된다교회 사무장으로 있던 ㅇㅇㅇ장로가교회들의 가슴에 달아줄 카네이션 꽃을 사면서한송이에 일천백원으로 이천여 개를 구입 했다그런데 사임금은 개당 칠백오십 이였다 필자와 그는 그의 불 신자 때부터 알고 지내온 사이인되교회 참석 오년만에 장로 직임을 찬탈하여 시무장로 재직 하였다 나는 그당시 그를 향해 "도독놈"이라고 소리첬고다시 안그러하겠다고 했지만 ..................... 그는 처음 교회 발 들여 놓을 땐 사업이 부도되여 무일푼 신세였다 그 교회 집사 권사집에 월세로 들어 와서권사권유로 교회 등록하였다그후사무장이되고 교회 신축이 시작 되였다 삼년 만에 아파트 두채가 생겼다고 소문이나서사무장 부인이 항의하고 소란을 피웠지만 어느 권사..

목장모임에 참석못한분을 위하여 -

목장모임에 참석못한분을 위하여 - 요일4장 10절 내가 하나님 사랑하는것이 아니라 하님이 우리를 사랑 하시느것 이라 사람들은 세상를 살아가며 노력하고 노력하여야 성공할수 있다고 합니다 지금까지 팔십이 되도록 열심이 살았기에 지금 내가 있다고 들 합니다 나무가 씨앗에서 싹이터서 뿌리 내리어 잘자라 삼년이되니 과실을 맺어 사람들에게 기뿜을 주지요 그래요 그 나무는 봄부터 가을까지 폭우과 태풍과 기근의 기갈에서 잘 견디였고 모진 한설풍도 추위도 이겨서 잘 자랐다고 하겟지요 그러나 그나무에게 햇빛이 없었다면 공기가 없엇다면 물이 없어도 살수 있을까오? 지금까지 살아 왔던것이 내 노력의 의한 것일까요? 내가 아무 노력하여도 이제까지 살아온것은 내 능력이 아니라 도와주시는 손길이 있었던 것이지요..

나의 실수는 거듭되고

볼리비아 선교사로 가셨다가 멕시코로 선교지 바꾼 정득수 목사 이야기 이다그는 우리교회 교회학교 출신이다 아동부,중등부를 거처 고등부 청년부를 수료한 토박이 이다신학교를 졸업하고 우리교회 전도사로 임직 하였다바로 윗 선배 기 에선 목사가 12분이 배출 되여 지금도 각지에서 목회하고있다그 아레 기 에선 5 분이 배출되여 목회 현장과 기관 목사로 시무하고있다유일하게 정 목사만 본교회로 임직 되였다 소년부에서 담임목사 로 교육활동 할 때 이야기 이다필자가 부장를 맡고 있을때교회학교 학생들과 교육활동 하고있을때 갑자기 정목사를 부르는 있이 생겨 무 의식중에 "야! 정득수 이리 와 봐" 하고 부르는 사건 이 발생 되였다정목사가 와서 귀속말로 "집사님 학생 있는데에서 정목사로 불러 주세요" 한다야구 ..

안상수 집사에 대한 이해

우리는 화곡동교회와 영곡교회 두교회가 화합하여 화곡동교회를 탄생 시키였다통합 되기전 화곡동교회는 장균제 목사님 중심으로 장씨 문가 네가정 으로 시작 되였고정병택 화곡교통 전무와 화곡교통 안내양과 직원 참여로 성장 발판이 되여 부흥 하였다한편영곡교회는 최용찬 장로중심으로 집사7명과 이상운 전도사로 최용찬 장로 사택에서 시작하여현 화곡동교회 자리에 조그만 교회를 짖고 진흙바닥에 가마니를 깔고 에배 드리였다 지금까지 생존하고 게신 분은화곡동 교회 에는 정병택장로 부부 외 에는 보이지 않고영곡교회는 안상수 집사만 유일하게 생존하고 게신다저는 당시 구로 남도교회에서 성가대 지휘를 맡아 주일에는 남도교회에서 봉사하였고저녁 예배는 화고동 교회와 영곡교회에 참석하였지요 교회 회의때마다 격한 발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