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허종목사의 이 글은 감리교 자유게시판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그래도 아닌 것은 아니다. 글쓴이 / 허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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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른말을 하는 것이 나쁜가? 개인의 허물이 들추어내는 일은 좋은 일이 아니지만 교회를 병들게 하는 일은 '아니라' 고 말을 해야 한다. 잘못된 일을 보고도 침묵하는 것은 범법자의 공범자이다. 절대로 아닌 것은 아니라 말해야 한다.
돈을 주고 담임목회자로 가는 것은 안된다. 돈을 받고 후임자를 정하는 일 역시 안된다. 능력도 없는 아들에게 교회 담임목회자 자리를 세습하는 것 더욱 안된다. 교회 돈을 횡령해서 실형을 받았으면 목회를 그만 두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간통죄로 실형을 받았으면 목회자 자격을 상실하는 것 역시 마땅한 일이다.
그런데 돈주고 담임목회자로 나가는 젊은 놈들이 있다. 그리고 은퇴하면서 돈 받고 후임목회자를 정하는 늙은 놈들도 있다. 대명천지에 간통죄를 짓고도 고개를 처들고 당당하게 목회하는 놈들도 있다. 큰 교회에서 목회 좀 한다고 30억짜리 집에서 사는 놈이 있는가 하면 교인이 사주었다고 3억짜리 스포츠 카를 타고 다니는 놈도 있다. 그런데 이런 놈들을 부러워 하는 정신 빠진 놈들도 있으니 더욱 한심한 노릇이다.
'돈 주는 것 너 봤냐?'고 말하는 놈들은 눈뜬 장님이나 다를 바 없다. '나 돈주고 목회 나간다.'라고 소문 내는 놈이 있겠는가? '나 돈받고 후임자 정했다.'라고 말할 놈이 또한 어디 있겠는가?
입소문으로 퍼지는 일들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그 입소문이라는 것이 사실이라는데 경악할 일이다.
대략 20년 전에 처음들은 이야기 하나를 소개하면... 농촌교회에서 평생 목회하신 목사님이 은퇴하게 되었다. 그런데 가난한 농촌 교회에서 은퇴하시는 목사님에게 은퇴금을 드릴 수 없었다. 그러니 은퇴하시는 목사님이 은퇴후 갈 곳이 없게 되었다. 그래서 후임으로 오는 목사가 은퇴비로 돈을 은퇴하는 목사님에게 드렸다. 그것이 당시에는 미담이 되었다. 어려운 선배 목사를 도운 일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은 은퇴하는 목사에게 돈을 주어야 하는 일이 목회자리를 사고파는 일처럼 되어 버렸다. 그러나 돈을 달라고 해서도 안되고 돈을 주어서도 안되는 일이다. 성직자의 미덕 중에 하나가 <청빈>이 아니었는가? 그런데 요즈음은 <청부>가 목회자의 미덕이 되었다. <청부 - 깨끗한 부자>란 신종어를 만들어낸 놈은 화가 있으리라.
J목사님이 목회를 나가려 했는데 돈을 달라고 해서 충격을 받았었다는 글을 쓰신 적이 있었다. 그리고 교단이 타락한 모습을 보고 이 시대의 예언자로 외쳤었다. 그런데 이 글들이 빌미가 되어서 교회를 떠나게 되었다는 글이 게시판에 올랐다. 그런데 다시 아래의 글들이 게시판에 올랐다.
내 마음을 아프게한 글들을 부분적으로 발췌했다. <이하 발췌의글 - '목회자는 어떠한 부정과 비리를 보았다 하더라도 그로 인하여 피해를 보고, 상처를 입을 지언정 그것을 고발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 목회자는 고발자가 아니라 치유자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목회자는 교회나 동역자의 위법이나 범죄를 보았고 알고 있다 하더라도 그로 인하여 아파하고, 대신 회개하며 자신은 그러한 죄를 짓지않도록 경성해야지 그것을 들추어 내고 고발하는 것은 아버지 노아의 수치를 드러낸 함과 같은 부덕한 짓이다. 목회자는 허물을 덮어주고 화목을 도모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동안 큰 목소리로 떠든 것은 하나님의 공의를 세운다는 명분이었지만, 실은 도덕적 우월주의와 자기 의에서 나온 것에 불과하다. (중략)>
구약의 예언자들이 완전한 의인이었는가? 아니다. 그들도 우리처럼 연약한 인간이었고 허물이 많은 인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언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여 외쳤다. 타락한 교회를 보고 모두 침묵만 하고 있다면 누가 이 교회를 바로 세우겠는가?
나는 목회자들에게 감동을 받지 못하고 평신도들에게 신앙적인 감동을 많이 받는다.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이 있다는 것은 교회의 축복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닌 것은 아니다. 예언은 개인의 허물을 들추어내는 일이 아니라 시대를 향해 외치는 말씀이다.
목회자들이여! 더 이상 침묵하지 말라. 죄악을 보고 침묵하는 것은 악한 시대의 공범자가 되는 일이다. 이제 한 사람에게만 무거운 짐을 맡기지 말고 함께 외쳐야 한다.
처처에 악이 있어 수없이 상처를 입히고 있는데 상처를 치유한들 또 악한 것들이 상처를 입지 않겠는가? 악을 제거하는 것이 진정한 예방이 아니겠는가?
나의 사랑하는 감리교회가 바로 서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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