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이야기

내복 세 벌

박 넝쿨 2023. 3. 22. 14:42


내가 열두 살 되던 해 이른 봄,
엄마는 나와 오빠를 남기고 하늘나라로 떠나셨다.
당시 중학생인 오빠와

초등학교 5학년인 나를 아빠에게 부탁한다며

눈물짓던 마지막 길.
남겨진 건 엄마에 대한 추억과 사진 한 장.

엄마는 사진 속에서 늘 같은 표정으로

웃고 있었다.

아빠는

그렇게 엄마의 몫까지 채워가며

우리 남매를 길러야만 했다.
그게 힘겨워서였을까?
중학생이 되던 해 여름 아빠는

새엄마를 집으로 데려왔다.

"엄마라고 부르라"는 아빠의 말씀을

우리 남매는 따르지 않았다.

결국 생전처음 겪어보는 아빠의 매 타작이

시작되었고,

오빠는 어색하게 “엄마”라고

겨우 목소리를 냈지만,

난 끝까지 엄마라고 부르지 않았다.

아니 부를 수 없었다.

왠지 엄마라고 부르는 순간

돌아가신 진짜 엄마는

영영 우리들 곁을 떠나버릴 것 같았기 때문에,

종아리가 회초리 자국으로 피 멍이 들수록

난 입을 앙다물었다.

새엄마의 말림으로 인해 매 타작은 끝이 났지만,

가슴엔 어느새 새엄마에 대한 적개심이

싹트기 시작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새엄마를 더 미워하게 되는

결정적인 일이 벌어졌다.
내방에 있던 엄마 사진을 아빠가 버린다고

가져가 버린 것이다.
엄마 사진 때문에 내가 새엄마를

더 받아들이지 않는 거라는

이유에서였다.
이때부터
새엄마에 대한 나의 반항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다른 사람의 기준으로 보면

새엄마는 분명 착하신 분이었다.

그러나 한 번 타오르기 시작한 적개심은

그 착함마저도 위선으로 보일 만큼 강렬했다

. 난 언제나 새엄마의 존재를

부정하였다.

그 해 가을 소풍날이었다.
학교근처 계곡으로 소풍을 갔지만,

도시락을 싸가지 않았다.

소풍이라고 집안 식구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점심시간이 되고

모두들 점심을 먹을 때,

계곡 아래쪽을 서성이이고 있는 내 눈에

저만치 새엄마가 들어왔다.

손에는 김밥도시락이 들려있었다.
뒤늦게 이웃집 정미 엄마한테서

소풍이라고 전해 듣고 도시락을

싸오신 모양이었다.

난 도시락을 건네받아

새엄마가 보는 앞에서 계곡물에

쏟아버렸다.
뒤돌아 뛰어가다 돌아보니,

새엄마는 손수건을 눈 아래

갖다 대고 있었다

. 얼핏 눈에는 물기가 반짝였지만

난 개의치 않았다.

그렇게 증오와 미움 속에

중학시절을 보내고

3학년이 거의 끝나갈 무렵

고입 진학상담을 해야 했다.

아빠와 새엄마는 담임선생님 말씀대로

가까운 인근의 인문고 진학을 원하셨지만,

난 산업체 학교를 고집하였다.

새엄마가 원하는 대로 하기 싫었고,

하루라도 빨리 집을 떠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집을 떠나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결국, 내 고집대로

산업체 학교에 원서를 냈고

12월이 끝나갈 무렵 경기도에 있는

그 산업체로 취업을 나가기로

결정됐다.

드디어 그날이 오고,

가방을 꾸리는데

새엄마가 울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한 번, 정말 다시는

집에 돌아오지 않으리라

마음속으로 결심했다.

경기도에 도착해서도 보름이 넘도록

집에 연락 한번 하지 않았다.

산업체 공장생활은 그렇게 시작되었고,

낯섦이 조금씩 익숙해져 갈 무렵

옷 가방을 정리하는데

트렁크 가방 맨 아래
검은 비닐봉투가 눈에 들어왔다.

분명 누군가

가방 속에 넣어놓은 비닐봉투.

봉투 속에는 양말과 속옷 두벌

그리고 핑크빛 내복 한 벌이 들어있었다.

편지도 있었다.

가지런한 글씨체.
새엄마였다.

두 번을 접은 편지지 안에는

놀랍게도 아빠가 가져간 엄마사진이

들어있었다.

새엄마는 아빠 몰래 엄마사진을 간직했다가

편지지속에 넣어서 내게 준 것이다.

이제껏 독하게 참았던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눈물 콧물 범벅이 되며

편지를 읽고 또 읽었다.

그 동안 쌓였던 감정의 앙금이

눈물에 씻겨 내렸다.

엄마가 돌아가신 이후 처음으로

그날 밤새도록 울고 또 울었다.

첫 월급을 타고 일요일이 되자,

난 홍천행 버스를 탔다.

밤새 눈이 많이 내려 들판에 쌓여있었다.

아빠, 엄마 그리고 새엄마의 내복.

새엄마 아니 엄마는 동구밖에 나와

날 기다리고 계셨다.
빗자루가 손에 들린 엄마 뒤에는

훤하게 아주 훤하게 쓸린 눈길이 있었다.

“새엄마! 

그 동안 속 많이 상하셨죠?
이제부턴 이 내복처럼 따뜻하게

엄마로 모실게요.”

아직도 말로 못하고

속말만 웅얼거리는 나를,

어느새 엄마의 따뜻한 두 팔이

감싸 안고 있었다.

 출처: 좋은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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