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교회 홈피에 올렸던 글

치유교회 탄생 이야기

박 넝쿨 2020. 11. 3. 20:18

 


영등포구 화곡동 까치시장 중앙사거리 아레 2층에

장균제 목사님과 가친들이 모여 화곡동교회 개척교회를 시작하였다.
교우들이 늘어나면서 시장 중앙사거리 윗쪽 현 낙원떡집 이층 넓은데로 이전하였고

까치산 터널 뚤리기 전 화곡교통(사장 정병택) 터널입구에 있어  직원 들이 등록하여 부흥되였다.

정병택 장종섭씨를 초대 장로피택하여 임직케 하여 초대 당회가 구성되였다

 

화곡동교회 이름은

교단 총회에서 서울 각 동마다 개척하여 교회를 설립하자고 결의다짐하여

그래서 각 동이름으로 교회명을 지어 나아갔다
당산동교회 양평동교회 등 이름으로 번저 나아갔다


한편
현 영락교회에서 개척한 강서교회에 게시던

최용찬장로 중심으로 6가정 이 영곡교회를 최용찬 장로님 자택에서 설립하여
이상운목사를 모시고 개척교회를 시작하였다
전기택(전종호부친) 교회 부지로 640여평(현 본교회자리) 헌물하여

교회 부지로 확정 지었다

 

양 교회에서 각 교회 신축문제로 심의 하다가

영곡교회는 부지가있고
화곡동 교회는 예산이 있어
세상에서 보기드문 두교회가 합치는 역사가 이루어 졌다

 

통합후
교회이름은 화곡동교회
담임목사는 장균제목사
당회장 장균제목사

댱회원 최용찬 정병택 장종섭 장로로 당회가 구성되였고

 

교회 신축 위원회을 구성하여

최용찬 위원장
정병택 부위원장
위원 집사 7명으로 하였다

 

1호 개척교회는 현 목민교회인
성일교회를 본교회 전도사를 파견으로 시작하여

타 교단인 화곡성결교회 수정교회 로 개척이 이루게 되였다

장균제 목사님이 화곡동교회를 사임하고

화곡일동교회를

큰딸이 운영하는 유치원에서 개척교회를 시작하게 되였다

2년후 사임하시고 고향인 홍성교회로 가시고

김영환목사님 부임후 3년만에 화곡일동교회가 산화되었다

 

화곡동교회 에 전북 김제 에서 김학만 목사가 부임하고 교회 건축이 시작되였다
교회 신축 위원회을 구성하여

최용찬 위원장
정병택 부위원장
위원 집사 7명으로 하였다

 

경기 노회에서 모든 행사는 화곡동교회 에서 행하였고

당시 교사 강습회 2박3일간 숙식하며 5년을 거행하는것을 감당하였다

 

뽀식이을 초청하여 어린이 초청잔치를 하였다

당시 신월 신정초등학교를 찻아가 각 담임마다 찻아뵙고 초청잔치를 소개하고

협조 요청하여 대성황을 이루어 다른교회 출석하는 어린이와 본교회 출석하는 학생을 내보다고

본교히 나오겠다는 결신자를 하나님께서 수 많이 주셨다

교회학교를 유년부 초등부 소년부를   학년부로 개편하였다

초교 1,2,3,4,5,6,중등부 1,2,3  고등부만 1,2학년부 와 3학년부로 개편하여

각부마다 부장과 교사를 임명하여 각부에 90~100명의 학생들로 주일마다 성행하였다

그리고 5학년부와 6학년부의 남자들로 축구부를 만들었고

그 축구부와 코치는  신정 초교 축구부로 이관 되였다 

 

장신대유명한 교수님들과  연대 교수님들이 화곡동교회 교회학교를 소문내시여서

서울 큰 교회들과 부산 교회에서 까지 교회학교 탐방 를 오곤 하였다

 

김학만 목사님이 정년퇴임에 따라 사임하고 김포 사우동 말씀교회를 개척하여 나가시고

 김의식목사가 부임하고

현 예배당을 신축하고 교회명을 치유하는 교회로 개명되였다